[상장협회] 부모님에 대한 치사랑 이제는 실천할 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 ‘부모님’이라고 이야기를 할 것이다. 부모님이 왜 소중하냐고 물어본다면 그동안 낳아주고 키워주셨기 때문에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부모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있느냐 라고 물어본다면 의외로 그런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은 또 드문 것 같다. 공기 중에 산소가 없으면 생존자체가 어렵지만 늘 산소가 있기 때문에 고마움을 모르듯, 늘 곁에 있고 태어날 때부터 부모님으로 내리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에 부모님의 소중함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이 병이나 사고로 일찍 돌아가신 경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다면 내 인생에 큰 시련으로 다가올 것이고 스스로 극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더욱 부모님의 소중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과거의 경우 자식들이 많다보니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는 것에 익숙했는데 요즘의 경우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모든 부분을 투자하다보니 성인이 되더라도 자립심이 없이 부모에게 의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등의 위기감이나 절박감은 거의 없어 보인다. 졸업을 한 후 취업이 안 된 자식들에게도 용돈을 주게 되다 보니, 자식들은 자신의 현재 수준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럴듯한 직업이나 노후가 보장되는 일자리를 찾으려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결혼 후에도 맞벌이를 위해 자식의 양육을 부모에게 맡기는 경우도 많은데, 자식들을 위해서 노후를 위해 마련한 돈까지 소비하거나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빈민층으로 전락하는 부모들이 생기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자식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베풀다가 본인을 키워준 부모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심어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도 어느 정도는 있는 것 같다.

가끔 부모에게 받은 사랑은 자식에게 돌려주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인 것 같다. 자식을 위해서 모든 것을 헌신하고 희생한 부모님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는 인성을 가진 사람은 인성적으로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이 생면부지 남에게는 어찌 잘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 ‘베품’은 진정성이 결여되어 지속성을 가질 수 없으며,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배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생활이라 고하는 것은 배려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사회생활은 받은 만큼 주는 것이 아니라, 받고자 하는 만큼 먼저 주는 것이다. 먼저 베푸는 사람이 호감도 얻고 인정도 받고 성공할 수 있다.

이제는 부모의 내리사랑에서 벗어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고 사랑하는 치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리 사랑의 경우 무조건 베풀어야 하지만 치사랑은 작은 관심을 통해서도 실현이 될 수 있다. 이성 친구에게 메시지 한번 보낼 시간을 할애해 부모님께 전화 한통 드린다든지,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한번 마련하거나, 손 한번 잡아드린다든지 하는 작은 마음의 실천만으로도 치사랑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사소한 관심과 정성만으로도 부모님은 감격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부모님의 사랑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부모님께 보답하는 치사랑을 실천할 때라고 본다. 그래야 그 모습을 보고 배운 자식들이 또다시 치사랑을 실천하지 않겠는가.

 

2009년 10월호

출처: [상장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