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참는다는 말이 유행한적이 있다. 이는 내가 가난한 이유는 부자들이 다 챙겨서이고 내가 성적이 나쁜 것은 다른 사람이 성적을 잘 받은 것이다라는 의미로 자신의 잘못된 처지를 다른 사람을 핑계로 삼아서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얼마전 책을 출간하게 되서 고마웠던 분들에게 사인을 해서 주고는 했는데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도 책 한권 써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쓴다’ 라는 식의 말을 하면서 ‘사업하는 사람이 책 쓸 시간은 있나 보지’ 라며 의도족으로 상대를 비하하는 것 같은 표현을 하는 분들을 일부 접하면서 고마움에 대한 표현도 상대의 감정을 건드릴 경우 의외의 반응이 나타난다는 것을 보고 상당히 조심을 하게 되었다.
또한 지하철 대합실에서 사람을 기다릴때 특정 종교에 대한 선교 활동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타 종교를 믿고 있다고 하면 그 종교는 잘못되었기 때문에 특정 종교를 믿어야 한다는 식의 독선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을 접한 경우도 꽤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매스컴상에 많이 나온 말이 양극화인데 실제로 살다보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보다는 다소 어렵거나 다소 여유있는 사람처럼 중간에 있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배제하고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단순화시켜 어느편에 서려고 하는 풍조가 많았는데 이것은 현실을 왜곡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실적이 좋은 친구는 담당하고 있는 거래처가 건실하거나 운이 좋았다는 이유로 폄하하면서 상대의 잘한 부분을 칭찬하기 보다는 상대를 낮추려는 생각이 너무 싶게 박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생각이 옳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틀린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독선적 사고가 우리를 너무 많이 지배해 왔었고 어려운 사람에 대한 배려의 마음은 좋았지만 가진자의 것을 빼앗아 줘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했거나 배아픈 마음을 자극해서 이익을 추구하려고 했던 것이 우리 생활속에 깊게 들어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찌보면 한정된 파이를 가지고 나누는 경우 적게 갖는 사람과 많게 갖는 사람으로 나뉠수도 있는데 파이를 키우려는 생각보다는 한정된 파이로 싸우려는 생각이 강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예를 들어 한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는 정치인의 입장이라면 맞을지 모르나 상대의 불행이 내 행복이고 내 행복이 상대의 불행이라는 생각이 너무 깊다 보니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려는 부분이 사라진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중심의 생각이나 우리의 이기주의에 의해 나한테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하다보니 너무 삭막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부모는 자식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인정을 받고 싶으면 상대를 인정하는 사고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가 생각한다. 서로 다투기 보다는 건전하게 사회를 발전시켜 함게 잘살아가야되는 공동체인데 학연, 지연, 혈연등 연고에 의해서 움직이고 연고를 만들려고 하는 것은 그 외의 사람과 배타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제는 파이를 키워야 되는 시점이기에 내가 인정을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상대를 인정해 주는 것이 자신이 인정을 받는 길이라 생각하고 지난 수년가 지배해온 갈등에서 벗어나 함께 한다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 앞서 먼저 시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상대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경쟁력을 높이려는 사고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8년 4월호
출처: [상장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