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잘된 것은 내탓이요 잘못된 것은 조상탓’이라는 말이 있듯이 잘못된 것에 대해 반성의 기회로 삼고 시행착오를 줄이려기 보다는 ‘나는 잘하려고 했는데 환경이 뒤따라 주지 않았다’ 등 부지불식간에 핑계거리를 찾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환경이나 다른 사람을 핑계거리로 삼는 것은 자기위안에는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나 이러한 특성의 사람들은 매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고 수동적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크지 않나 싶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성공사례에 도취되어 있거나 강한 자부심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도 나는 해냈다’ 라며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고 성취감에 빠져 있는 경우를 볼때가 있다. 하지만 무인도에서 혼자 일궈낸 일이 아니라면 함께 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분업화 사회에서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상황은 극히 드물다고 본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했을때 주위에서 축하를 받고 또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축하를 받는것으로 끝나지 말고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축하를 받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고3 수험생이 있는 경우 고3 집안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족 모두가 혹시 공부에 방해되지 않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를 생각하게 되고 어머니의 경우는 교회나 절등을 찾아 합격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싶다. 이와 같이 가족 모두의 합격을 기원하는 마음과 배려등이 힘이 되어 좋은 결과를 낳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가족에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부모님께 큰 절을 드리는 등으로 고마움을 표시한다면 자식을 키운 보람, 자랑스러운 내 자식이라는 것에 대해 무한한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생일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뜻깊은 날로써 축하를 받고 싶고 주위로부터 축하를 받는 것은 좋은 풍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축하를 받는 것으로 끝나기 보다는 낳아서 키워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날, 친구들로부터 생일 선물을 받듯이 부모님에게 감사의 선물을 하는 날이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본다.
최근 몇 년사이에 인위적인 다양한 계층간의 구분이 심화되어 왔고 어느쪽엔가 서기를 강요 당해오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편가르기에 익숙해져 있지 않나 싶다. 나와 다른 것을 차이라 생각하기 보다는 잘못된 것이고 타도의 대상이라는 등의 잘못된 사고가 심화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편가르기 사회가 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함께 하려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이 급격히 적어지지 않았나 싶다. 상대의 불행이 내 행복이고 상대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리 작은것도 용서하지 않는 천박한 사고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여유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나보다 못한 사람을 배려할줄 알고 고마운분이나 세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라 본다. 내 생일날 축복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 작지만 감사의 선물을 드리는등의 작은것부터 실천해 나가는것이 중요할 것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서로가 함께하고자 할때 사회는 촉촉함과 온기가 가득한 살만한 세상이 되지않을까 생각한다.
2007년 12월호
출처: [상장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