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하고자 할때 원하는 층의 스위치를 제대로 선택해야 문이 열릴 것이고 다른 숫자를 누른다면 엉뚱한 층으로 안내할 것이다. 이와 같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지 않고 마냥 기다리거나 잘못된 메시지를 주고는 애꿎은 기계만 탓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리라 본다. 상대가 인식하는 언어나 행동으로 뜻을 전달해야 함에도 의외로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표현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경우는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닌 동물이나 기계 또는 모든 자연 현상에도 적용될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고자 할때는 대상이 사람이든 물체이든 간에 늘 인식하고 반응해야 되는 입장에서 대화를 하고자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상대의 수준이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말을 한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때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은 물론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상대의 뜻을 이해하고 공감을 해야 함께 할 수 있듯이 상대 역시 내 생각을 자기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공감을 할때 비로써 내가 원하는 반응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상대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라 판단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실망이 클때가 많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서 상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원하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해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의사표현을 할때 다소 거칠며 직선적인 경향이 있어서 나이 드신 분들이 버릇이 없다는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젊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나이든 사람들이 잘잘못에 대해 명확히 지적을 하기 보다는 ‘어른이 이야기 하는데 말대꾸를 한다’는 식의 대화법은 계층간 벽을 두텁게 할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젊은 사람들은 나이드신 분들과 대화를 할때 공손하게 부드러운 말로 이야기를 하되 윗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에는 가능하면 때와 장소에 맞는 완곡한 표현을 하는 것이 필요 할 것이다. 또한 반대의 경우에도 내가 상대보다 나이 많다는 것으로만 누르기 보다는 옳고 그름과 함께 어느 부분이 현명한 일인가라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 표현도 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고서 상대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표현을 할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쓰는 화법은 사회를 매우 건조하게 만들기에 부드러운 말을 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늘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시민단체나 개인의 요구를 보면 상대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해달라는 요구를 많이 하는데 그것보다 내가 다른 사람이나 조직을 위해 무엇을 먼저하겠다라는 말을 들어본적이 없는 것 같다. 이제는 요구를 하기 전에 내가 할일을 했는가 더 큰 것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베풀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 원하는 것을 먼저 하게 된다면 인정을 받고 보호하고 그 사람을 키워주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경조사가 있을때 여러 가지 정황으로 갈수가 없다면 전화 한통화를 한다든지 메시지를 띄우는 것이 필요한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필요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어떠한 형태로든 표현을 하지 않은 경우라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서먹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늘 표현을 하고 특히 감사하는 마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 함께하는 마음을 표현을 하고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 않나 싶다. 애매모호한 표현 보다는 상대가 알수 있는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며 또 그렇게 할 때 비로써 상대도 나에 대해 진심으로 대할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08년 10월
출처: [상장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