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다. 직장인이라면 송년회에 이은 신년회 등 회식이 잡히는 시기다. 직장에서 회식을 한다고 하면 흔히 ‘뭘 먹을까?’가 관심사가 되곤 한다. 그럴 때면 필자는 살짝 안타까움을 느낀다. 회식은 단순히 먹기 위한 모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은 저마다 능력이나 성격,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다. 그런 사람들을 통솔하며 일하다보면 리더는 본의 아니게 아랫사람에게 채근하거나 언성을 높일 때도 많다. 당연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해와 감정의 앙금이 쌓일 수밖에 없다. 회식은 그런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묵은 감정을 털어버리는 자리다. 좋은 음식은 서먹한 분위기를 깨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수단일 뿐, 그것이 회식의 목적은 아니다.
어느 사장님은 직원 중 한 사람에게 연말연시 회식 메뉴를 직접 고르게 했다. 그 직원은 한우를 골랐다. 사장님은 그를 불러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번 회식비는 자네가 부담한다고 생각하고 다시 골라 보게.’ 그랬더니 그 직원은 된장찌개를 골랐다고 한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런 사장님이 야속하고 인색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나는 같은 CEO로서 그 사장님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다. CEO라고 회사를 위해 수고하는 직원들을 실컷 즐기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CEO는 배로 말하면 선장과도 같다. 자신을 믿고 회사라는 한배를 타준 직원들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 생각이 있는 경영자라면 결코 기분따라 회사 돈을 흥청망청 쓸 수 없다. 늘 회사 살림을 걱정하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물론 직원들도 그런 위기의식과 애사심을 갖고 회사 돈을 썼으면 하는 것이 CEO의 바람이다.
둘째, 자칫 먹고 마시는 데 마음이 빠져 ‘직원들 간의 소통과 사귐’이라는 회식의 본 목적이 퇴색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회식은 일 이야기만 주고받던 직원들이 자유로운 주제로 대화하며 인간적으로 친밀해질 수 있다. 평소 마주칠 일이 없던 타 부서 사람들과도 사귈 수 있는 기회다. 그런데도 회식 하면 고깃집, 횟집, 치킨집에서 정해진 자리에 앉아 허리띠를 풀어놓고 양껏 먹고 마시는, 전근대적인 회식을 생각하는 직장인들이 너무도 많다. 어느 고깃집 사장님은 ‘보통 1인당 1.5인분 정도씩 먹던 직장인들이 회식 때면 3인분 이상을 너끈히 먹는다’고 말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소통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이제는 직장모임도 ‘모여서 뭘 먹을까?’를 생각하는 회식會食에서 ‘어떻게 모두가 즐겁게 시간을 보낼까?’를 고민하는 회락會樂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일례로 필자의 회사에서는 봄과 가을에 사옥 옥상에서 ‘가든 파티’를 연다. 정해진 자리가 없는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좁은 공간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릴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교류가 거의 없던 직원들과도 자유롭게 대화하는 소통과 사교의 장이 되는 것이다.
또 지난 연말 송년회는 최근 사옥 2층에 문을 연 잡카페 ‘GROUND 125’에서 와인파티 형식으로 진행했다. 100명 넘는 직원들이 와인잔만 갖고 돌아다니며 곳곳에 마련된 다과를 나누며 행사를 즐겼다. 특히 참석자는 모두 명찰을 착용함으로써 처음 만난 사람끼리도 바로 대화를 할 수 있게 했다. 직원들의 반응 역시 다양했다. 카페 특유의 조명과 분위기가 어우러져 특별대우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는 직원도 있었고, 자주 보기 힘든 지역본부 직원들과 만날 수 있어 유익했다는 직원도 있었다.
다행히도 회식 문화의 패러다임이 새롭게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건 필자뿐만이 아닌 것 같다. 불필요한 음주를 강요하는 분위기를 지양하고 모두가 함께 즐기는 영화나 공연 관람, 장기자랑, 볼링 등 레저형 회식 문화를 채택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칼럼의 주제는 회식이었다. ‘취업을 준비 중인 나랑은 별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선기업 문화에 이 같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의 취업공부다.
방식이야 어찌됐든 회식 자리가 직원들이 맘껏 즐기고 소통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이 세상 어느 CEO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취준생이라면 한번쯤 그런 CEO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취업준비일 성 싶다.
2017년 1월호
출처: [투머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