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아내가 친구들과 모임이 있으니 저녁식사를 하고 들어오라는 연락을 해왔다. 그때 대학생인 아들이 오늘 저녁은 본인이 아버지를 책임지겠다며 데이트 신청을 한 적이 있었다. 아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청계천을 거닐었는데 매일 보면서도 단둘이 집밖에서 함께 한 경우가 처음이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따뜻함이 흐르는 흐뭇한 감정을 느꼈다. 이 이야기를 간부회의 때 했더니 회사 이벤트로 추진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와 그해부터 필자가 경영하고 있는 스탭스에서는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연례행사로 추진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가족 단위로는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가기도 하고 어머니와는 쇼핑을 하는 등 함께하는 경우가 많으나 아버지와 단둘이 데이트를 한 경험은 거의 없는 듯 했다. 그래서 좀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전화나 문자 등으로 정식 데이트 신청을 하고, 공원산책이나 영화보기, 호프집에서 한잔하기 등 반드시 집이 아닌 곳에서 단둘이 데이트하는 기준을 지키도록 하여 아버지와 둘만의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였다.
처음 행사를 진행했을 때는 매일 보는 아버지께 새삼스럽게 데이트 신청을 한다는 것도 쑥스러웠는데 어렵게 말씀드려도 ‘혹시 무슨 일 있는 것 아니냐’며 걱정부터 하시면서 어머니와 사전에 상의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아버지는 어려운 사람으로 인식되어 있어서인지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는 등 처음에는 서로가 어색해 했다고 한다.
해를 거듭하여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진행하다 보니 회사행사라는 핑계로 데이트 신청의 어색함을 줄일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둘만의 식사시간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워져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직원은 배드민턴을 같이 치거나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흰머리와 주름살 많아지신 아버지의 모습을 느끼게 되었고 아버지는 내가 기대야 할 존재가 아닌 지켜드려야 할 소중한 분이라는 생각에 가슴에 뭉클해졌다는 경험담을 전하기도 했다. 기혼자의 경우 직장생활에다 자식들에 정신이 없어 안부전화도 제대로 못한 것이 항상 죄송스러웠는데 아버지와 데이트 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언젠가는 자식들도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들과 데이트를 하고난 아버지들은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어머니께는 자식 키운 보람을 느낀다며 흐뭇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십여년 전만해도 자식이 부모에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며 최고의 선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을 내서 멀리 여행을 가지는 못하더라도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통해 부모님에 대한 작은 정성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은 감동할 것이다. 필자는 이번에도 직원들이 쓴 아버지와의 데이트 소감문을 읽으며 사장이 아닌 아버지의 심정으로 직원들의 마음 헤아릴 수 있었고 인간적인 애착을 느끼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2010.07.02 한경에세이
출처: [한국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