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어 낮에는 아직도 햇살이 따갑지만 저녁이 되면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앞만 보며 뛰어 왔다면 가을은 멋진 성과를 위해 미흡한 부분은 없었는지 뒤돌아 보는 의미있는 계절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주의의 심화는 핵가족의 사회에서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성향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외부로부터 독립된 나만의 공간은 의외로 많지 않고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오는 과정을 통해 오늘의 내 모습이 있는 것이며 미래의 내 모습 역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져 갈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가족에서의 나의 위치는 부모의 자식이며 형제 자매중의 한사람이고 학교나 각종 동아리에서의 나는 동료나 선후배로써 존재 하고 있음을 누구나 인식하리라 본다.
몇 년전부터 숙명여대 멘토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과정중의 일환으로 “관계속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학생들의 발표 시간을 갖고 있다. 나와 관련된 많은 사람중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모두가 부모님이라고 한다. 어머니와는 편한 마음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는 등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 반면 아버지는 웬지 어려운데다 경제 활동을 하시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함께 하는 경우가 드물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였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분이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분인데도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아온 것 같아 부끄럽다는 이야기도 많이 있었다. 마치 공기중에 산소가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추진한 적이 있었다. 의외로 아버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늘 있었으나 표현을 한 경우는 별로 없었으며 특히 단둘이 여행을 한다든지 공원을 산책하거나 술자리를 마련해본 경우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회사 차원에서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추진하려고 할때 매일 보는 분인데 쑥스럽고 어색한데다 단둘이 집이 아닌곳에서 데이트를 하게 되면 무슨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걱정을 하는 직원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 아버지와 데이트를 마치고 난 직원들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성인이 된 자신이 부모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지 못하고 아직도 부모에 의존하려고만 하지 않았는가 라는 미안한 감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은퇴를 했거나 구조조정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도 집안을 꾸려가야한다는 부담감에 부쩍 늙어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죄책감으로 와 닿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버지와는 처음 갖는 둘만의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뜨겁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고 또 흐뭇해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는 아버지의 늘 옆에 있는 자식으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했다는 직원들이 많았다.
정말 소중한 분이면서도 잊고 살아왔거나 생각은 하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자식으로써의 마음을 ‘아버지와의 데이트’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조금이나마 표현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필자가 대표로 있는 스탭스라는 특정회사의 이벤트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벤트로써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나보다는 내 자식을 먼저 생각하는 우리들의 아버지에게 늘 감사하고 부담을 지어주는 자식이 아닌 부모의 힘이 되어주는 자식이 될 것을 약속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07년 10월호
출처: [CHIEF EXECU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