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를 가청 주파수라고 하고, 볼 수 있는 범위의 빛의 파장은 가시광선이라고 한다. 굳이 이렇게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에 다른 읾을 붙여둔 것은 듣거나 보지 못하는 다른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평선이나 지평선이 평평하게 보인다고 해서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사 그런 주장을 펼친다 해도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당할 게 뻔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세상의 모든 일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본질적인 부분이 무엇이 있고,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즉 외부로 표출되는 것 이면에 또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고, 다수가 따르는 보편적인 것과는 다르지만 소수가 향유하는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적 가치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를 인정하고 고려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즉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두고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나 원인 등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주류가 아니라고 해도 소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공조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처럼 나와 다른 의견, 여러 가지 다양하고, 색다른 의견을 고려의 대상으로 삼을 때 전혀 새로운 사안이나 방식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사고의 폭 역시 더욱 깊고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업무를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항상 해오던 일반적인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직원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회사에서 배우고, 대부분의 사람이 사용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해도 그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적정한 선에서의 성과를 내고 있다면 그의 방식을 존중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해 볼 수 없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효율성을 고려해 보는 등 노력을 하다 보면 더 좋은 방법이 도출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만약 자신의 의견이 동의를 쉽게 얻지 못하고 보편적인 것들과 다소 다르다면 그때는 자신의 생각, 일하는 방식 등이 과연 더 나은 것인지, 자신과 조직에 더 많은 이익을 주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반대로 주류의 방식이나 흐름에도 촉각을 세울 필요가 있다.
원칙과 분명한 주관을 바탕으로 소수 의견을 수용하라
하지만 소수 의견을 청취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분명한 주관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되 참고자료로 삼아야지, 그것이 주가 되어 버리는 주객전도의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의견은 개인과 조직, 나아가 사회 전반에 다양성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음식을 하거나 저장할 때를 생각해 보자. 적장한 양의 소금을 가미하면 음식의 간울 맞추어 맛을 내주고, 저장할 때는 부패를 막아 준다. 하지만 그 양이 너무 많으면 너무 짜져서 먹을 수 없게 되고, 염장할 때도 적정한 농도를 유지하지 못해 제대로 자장하지 못하게 된다. 토양에서도 적당한 양의 나트륨은 식물의 성장을 촉진하지만 너무 많아지면 식물이 고사되고, 사막화가 진행된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양이 적당할 때 의미가 있듯이 소수의 색다른 관점도 참고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는 하나의 제안으로 받아들여야지, 이를 일반적인 생각으로 오도한다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수도 있다. 무한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교우위의 경쟁력이 전제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선, 조금 남다른 시선, 혹은 전혀 다른 영역의 사람이 가진 시선 등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단 그 가치는 사회적인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한편으로 경계해야 할 다른 한 가지는, 명확히 잘못된 것이라면 분명하게 지적하고 이에 대해 수정을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대로 봐주는 태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삼각형이 원으로 보이는’ 사람, 즉 다소 삐딱하게 세상을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시선은 경계해야 한다.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삼각형이 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런 주장을 묵과하거나 그에 편승해 자기 편의만 추구하는 것이다.
가치관이나 성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이를 명확하게 인지시켜 주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색다른 시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되 올바른 가치와 원칙이라는 체를 통해 한 번 걸러서 플러스적 요인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로 잘못된 시각, 나와 조직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잘못된 가치관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2011년 3월호
출처: [리쿠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