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머로우] 공작새보다 벌새처럼

둥우리족, 학점 세탁, 스펙 리셋… 최근 몇 년간 취업이 대학생들의 지상과제가 되면서 생겨난 신조어들이다. 취업난이 극심한 데다 졸업하면 취업이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졸업을 연기하고, 재수강에 편입까지 해가며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한 경제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그렇게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한 대졸 신입사원들의 1년 내 퇴사율이 25%나 된다고 한다.

이유가 뭘까. 신입사원이 회사에 대해 갖는 기대치와 실제 신입사원으로서 겪는 현실 간의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한다. 신입사원은 ‘우리 부서는 이러이러한 일을 하는 곳이니, 나도 그런 일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입사하지만 실제상황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인사부서에 배치된 신입사원은 ‘나도 이제 다른 직원들의 인사평가를 작성하고, 입사면접에도 참여하겠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서류심사를 보조하고 합격한 지원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면접일정을 알려주고, 면접날 응시자들을 줄 세우는 일 등의 잡무雜務가 신입의 일거리다. 기획부서로 간 사원은 자신이 신제품을 구상하고 홍보 전략을 짜는 등의 거창한 일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 실제로는 발이 퉁퉁 붓도록 현장을 뛰며 소비자에게 설문을 돌리고 결과를 정리하는 힘든 일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적어도 입사한 지 5년, 길게는 10년 정도는 되어야 기획다운 기획을 할 수 있다.

신입사원은 기초 군사훈련만 겨우 마치고 자대에 갓 배치 받은 신병과도 같다. 자신의 회사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며,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등 기본적인 사항조차 감을 잡지 못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런 신입사원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서류 복사, 커피 타기, 비품 관리 등 잔심부름 정도가 고작이다. 단순작업 혹은 열심히 해도 별로 표가 나지 않는 일만 하며 한 달 정도를 보내다 보면 신입사원들의 심리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흘러간다. 첫째는 ‘내가 고작 이런 일 하려고 들어온 줄 아나?’ 하고 자존심 상해 하며 힘든 일은 가급적 맡지 않으려고 요령을 피우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정성껏 해내며 좋은 결과를 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심지어 ‘이런 궂은일은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일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일하면 금방 눈에 띄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공채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해외 지사에서 보낸 샘플을 세관에 가서 찾아오고 설계도면을 복사하는 일이 내가 처음 맡은 업무였다. 지금이야 버튼만 몇 번 누르면 원본과 별 차이 없는 깨끗한 복사본이 나올 정도로 복사기 성능이 발전했지만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블루카피’라고 하여 화학약품이 칠해진 종이에 암모니아액이 묻으면 색깔이 변하는 원리를 이용해 복사를 해야 했다. 암모니아액이 잘 묻는 가운데 쪽은 진하게 복사가 되지만, 가장자리는 자칫 흐리게 나오기 쉬워 요령이 필요했다. 하지만 특별한 전문 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주로 여직원들이 맡는 일이었다.

나는 이왕 할 일이라면 제대로 해보겠다는 생각에 복사기 돌아가는 속도 등 조건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복사가 잘되는 최적의 조건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조건에 따라 복사를 하니 늘 최고의 품질로 복사를 할 수 있었다. 공채로 입사한 선배나 동기들은 ‘자네는 대졸 공채 출신인데, 왜 복사 같은 허드렛일을 붙잡고 있냐? 같이 공채로 들어온 우리까지 이미지 나빠지게…’ 하고 핀잔을 주었지만, 나는 복사‘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복사‘도’ 잘하는 직원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윗사람들에게도 ‘박천웅 씨는 작은 일도 잘하는 것을 보니 큰일도 맡길 수 있겠다’는 믿음을 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중요한 일을 맡으며, 요직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훗날 임원이 되었을 때는 물론, 퇴직 후 사업을 하는 지금도 그때 터득한 태도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환경이 바뀌는 오늘날, 개인과 기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속도다. 도전적인 목표가 생기면 몸을 사리지 말고 바로 덤벼들고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화려한 깃털을 활짝 뽐내며 조심조심 걷는 공작새로는 안 된다. 먹거리를 찾아 부지런히 날갯짓을 쉬지 않는 벌새가 승산이 있다. 물론 공작새처럼 남들로부터 주목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한테나 있다. 진정 돋보이고 싶다면, 겉만 화려한 속 빈 강정보다는 단단한 알사탕처럼 속이 꽉 찬 사람이 더 멋지지 않을까.

대학은 여러분이 사회인이 될 준비를 마쳐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전 여러분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실력을 쌓는 것도 좋지만 먼저 학교와 사회의 차이점을 분명히 알기를 바란다. 공부로 순위가 결정되는 학교와는 달리, 사회에서는 단순히 지식만 갖추었다고 성공할 수 없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일을 가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이런 자세를 바탕으로 최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 함께하면 힘이 솟고 시너지가 나는 사람, 조직의 목표에 자신을 기꺼이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어디서든 환영받는다. 공작새와 벌새 중 여러분의 마음자세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점검하길 바란다.

박천웅

현재 국내 1위의 취업지원 및 채용대행 기업인 스탭스(주) 대표이사. 한국장학재단 100인 멘토로 선정되어 대상을 수상했으며, (사)한국진로취업서비스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대기업 근무 및 기업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하는 멘토로 맹활약 중이다.

201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