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N포세대’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고 있다. 취업이 힘든 나머지 인생의 중요한 요소인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청년들을 가리켜 3포세대라고 한다, 여기에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한 5포세대, 나아가 희망과 꿈마저 포기한 7포세대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한때 우리 사회에 ‘힐링healing 열풍’ 한바탕 크게 불었던 이유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유명인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청년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희망을 불어넣기 위해 강의를 하거나 책을 출간했다. 힐링을 테마로 한 TV프로그램들도 덩달아 인기를 끌었다. ‘오늘날 취업이 힘든 것은 여러분 책임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꿈을 쫓으라.’ 등의 메시지를 전하며 청년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주려 했지만, 그다지 실질적인 도움은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멋지고 그럴 듯한 말로 위로한다고 해서 청년들이 처한 ‘팍팍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당장 취업이 되지 않아 걱정인 청년들에게 ‘이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누구 책임이냐’ ‘꿈이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담론은 문제의 본질과는 자못 동떨어진 물음이다.
개인적으로 우리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힐링보다 쿨링cooling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어제까지 살아온 삶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감나무 밑에 누워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듯 마냥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먼저 바뀌는 것이 어떨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갭’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N포 문제의 출발점은 결국 취업이다. 블록 하나가 쓰러지면 뒤의 블록들까지 연이어 쓰러지는 도미노처럼, 생계와 직결된 취업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 보니 연애, 결혼, 출산 등 인생 전반의 계획이 모두 쓰러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N포 극복의 선결과제인 취업을 위해 청년들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취업이 되지 않아 고민하는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취업에 대한 목표를 높게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두가 선망하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은 가고 싶어 하지만, 비교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은 기피한다.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급여를 주는 직장이 아니면 선뜻 지원하려 들지 않는다. 우리가 대학 진학을 준비할 때를 생각해 보자. 누구나 소위 명문대에 입학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가 명문대에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자신의 실력에 맞거나 한두 단계 정도 하향지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취업도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던 학교는 아니지만 내가 들어갈 수 있고 나를 받아주는 학교를 택했던 것처럼, 직장을 구하는 것도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원하는 곳에 취업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 취업 자체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눈높이를 낮추는 타협과 절충이 필요하다.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취직하고, 없으면 안 하겠다고 생각하기보다 나를 인정해주고 받아주는 곳에 가서 일을 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N포의 탈출구가 보인다.
필자는 다년간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인력 컨설팅 및 취업지원 회사를 운영하는 동안,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이 분야는 앞으로 전망이 없다’ ‘이 일은 내 적성에 맞지 않다’ 등의 이유로 그 일을 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투머로우> 독자 여러분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정말 그 일이 전망이 없고 적성에 맞지 않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단지 그 일이 하기 싫어서 하지 않았는지. 등산이 건강에 유익한 운동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등산을 귀찮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어차피 내려올 산을 뭐 하러 힘들게 올라가느냐?’ 식으로 핑계를 찾는다.
구직자들에게 있어 대기업, 공기업에 취직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중소기업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나를 선택해주는 곳에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던 호불호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전에, 그 일을 좋아하려고 노력해보자.
필자는 신문을 읽을 때 정치면을 좋아했다. 하지만 회사를 설립한 뒤 ‘CEO로서 경제와 시사상식을 몰라서야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신문을 읽을 때 정치면보다 경제면을 먼저 찾아 읽고, 경제신문도 읽기 시작했다. 비록 내가 좋아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내게 꼭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에 읽으면서 메모도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꾸준히 경제기사를 읽는 동안 회사에 영향을 주고 있거나 줄 만한 내용을 중심으로 메모하면서 경제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어떤 경제상황에 회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물론, 업계의 동향까지 살펴보는 통찰력까지 갖출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좋다, 싫다’고 단정 짓기 전에 열심히 하다 보면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고, 주위로부터 인정도 받게 된다. 인정을 받으면 그 일이 더 좋아지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 시간이라는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취업에도 놓쳐서는 안 될 때가 있다. 내가 원하는 직장이, 과연 제한된 시간 속에서 노력하면 정말 들어갈 수 있는 직장인지 돌아봐야 한다. 아니라면 눈높이를 낮출 줄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취업재수를 무릅쓰고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들어갔다가 나이 많은 신입사원을 반기지 않는 회사 분위기, 나이 어린 상사 때문에 갈등하다가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들을 많이 봐 왔다.
일을 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를 잘하기 위해 다른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얻으려고 하면 그 어느 것도 손에 넣을 수 없다. 취업이라는, 우리 청년들의 지상과제를 위해 마음의 눈높이를 낮추고, 또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더 빠른 성장을 할 것으로 확신한다.
2016년 3월호
출처: [투머로우]